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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부활이 없다면 01부
♥ 고린도전서 15장은 흔히 부활장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장입니다. 해마다 부활절이 다가오면 부활장을 암송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생
때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았던 저는 성경의 유명한 장을 암송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매우
훌륭한 성경 교사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성경 암송은 ‘조용한 영적 혁명’ 이라고 불립니다. 오늘부터 앞으로 몇 시간 동안 고린도전서 15:13-19절에서 바울이 말한 ‘만약 부활이 없다면’ 이란 주제로 몇 시간 성경을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역사에는 만약(if)이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부활에 대한 논증을 하기 위해 짧은 본문 속에 무려 여섯 번이나 만약(if)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서, 논쟁을 주도하기 위해서 던진 질문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부활에 대한 논증을 위한 것이며, 부활이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란 믿음과 확신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만약 부활이 없다면” 이란 가정 아래 던지는 질문과 답변은 우리에게 부활의 참된 의가 무엇인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은 부활이 있기 때문에 참된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며, "부활의 의"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믿음을 참되게 하는 것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역사에는 만약(if)이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부활에 대한 논증을 하기 위해 짧은 본문 속에 무려 여섯 번이나 만약(if)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서, 논쟁을 주도하기 위해서 던진 질문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부활에 대한 논증을 위한 것이며, 부활이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란 믿음과 확신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만약 부활이 없다면” 이란 가정 아래 던지는 질문과 답변은 우리에게 부활의 참된 의가 무엇인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은 부활이 있기 때문에 참된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며, "부활의 의"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믿음을 참되게 하는 것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 당시 시대 상황은 흔히 무식이 철학이 전혀
없고, 야만적인 문명이 지배하던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당대에는
근대의 지성인들이 그토록 흠모하고 열광하던 고대 철학이 꽃을 피우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그리스에는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르스 철학이 지중해 연안의 모든 나라에 퍼져 있었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스토아 학파는 ‘감정으로부터의 해방, 즉 기쁨과 슬픔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을 궁극적 목표로 삼기 때문에 금욕주의를 강조’ 했습니다. 그래서 "부동심의 경지(아파테이아-apateia)" 를 인생의 최고선으로 보았습니다. 이들은 감정을 완전히 배제시키고, 삶에 대한 무관심과 환멸이 느껴질 때 자살을 허용합니다. 이런 사상(思想)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교양과 지성의 표준이 될 때 교회는 급격하게 이성주의로 기울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철학의 주류가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을 때 이들을 상대로 부활을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바울 사도와 논쟁을 벌이며, 부활에 대해 조롱했고,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성도들의 믿음을 자연스럽게 파괴했습니다.
[그때에 에피쿠루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에 속한 어떤 철학자들이 그를 만나매 어떤 사람들은 이르되, 이 서투른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가 이방신들을 전하는 자로 보인다, 하니 이는 바울이 그들에게 예수님과 부활을 선포하였음이라] (행17:18).
[그들이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하여 들을 때에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고 다른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행17:32).
당시 그리스 철학의 기본 원리는 이원론이었습니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철저히 분리하였고, 영적인 것은 무조건 선(善)이고 육적인 것은 무조건 악(惡), 또는 속(俗)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부활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그리스 철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두개인들 역시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부활을 인정하고 믿기는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는 철저히 부정했고, 믿지 않았습니다.
스토아 학파는 ‘감정으로부터의 해방, 즉 기쁨과 슬픔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을 궁극적 목표로 삼기 때문에 금욕주의를 강조’ 했습니다. 그래서 "부동심의 경지(아파테이아-apateia)" 를 인생의 최고선으로 보았습니다. 이들은 감정을 완전히 배제시키고, 삶에 대한 무관심과 환멸이 느껴질 때 자살을 허용합니다. 이런 사상(思想)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교양과 지성의 표준이 될 때 교회는 급격하게 이성주의로 기울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철학의 주류가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을 때 이들을 상대로 부활을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바울 사도와 논쟁을 벌이며, 부활에 대해 조롱했고,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성도들의 믿음을 자연스럽게 파괴했습니다.
[그때에 에피쿠루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에 속한 어떤 철학자들이 그를 만나매 어떤 사람들은 이르되, 이 서투른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가 이방신들을 전하는 자로 보인다, 하니 이는 바울이 그들에게 예수님과 부활을 선포하였음이라] (행17:18).
[그들이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하여 들을 때에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고 다른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행17:32).
당시 그리스 철학의 기본 원리는 이원론이었습니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철저히 분리하였고, 영적인 것은 무조건 선(善)이고 육적인 것은 무조건 악(惡), 또는 속(俗)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부활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그리스 철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두개인들 역시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부활을 인정하고 믿기는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는 철저히 부정했고, 믿지 않았습니다.
♥ 바울 사도가 부활을 증거하던 때는 바로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교인들
역시 이런 불신의 시대 풍조를 거슬러 믿음을 지켜야 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부활을 조롱하고 부정하는
시대에 그들과 맞서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복음을 전하기 쉬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들에게도 오늘날 못지 않는 강력한 반 기독교적 철학이 있었고, 사상이 있었고, 과학이 있었으며,
자신들만 종교가 있었습니다. 오늘날보다 훨씬 심한 반대와 조롱과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유난히 강했지만 유일한 것, 절대적인 것보다는 다원주의를 추구했습니다. 복음서에는 몇몇 그리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찾아와 그분의 부활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자 면담을 요청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이들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온 사건, 나사로의 부활로 인해 인간의 삶과 죽음, 부활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다시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님께 아뢰니라.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을 때가 왔도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1-24).
[그러므로 이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다시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님께 아뢰니라.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을 때가 왔도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1-24).
이들에게 죽었던 나사로가 나흘만에 무덤에서 살아 나온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만약 부활이 실재한다면 이는 의학에나 철학이나 과학적 영역에서 일대 혁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활의 실재 여부는 온 인류의 생활 방식, 삶의
가치관, 경제관 등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일대 사건일 수 밖에 없습니다. 부활이 단지 종교적 확신이나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역사적이며, 실재적인
사건이라면 세상은 뒤집어지고 말 것입니다.
성도들은 믿음으로 부활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건 이상의 실재적 사건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를 보면 부활에 대해서 아무런 묵상도 깊이 있는 생각도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인생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습니다. 이 땅의 육신의 삶이 전부가 아니고, 다시 살아나 영원히 산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것이야말로 어떤 정신 혁명보다 위대한 혁명이며, 놀랍고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활을 믿는다면 육신의 삶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을 믿는다면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이미 부활에 대한 믿음이 들어오는 순간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안개가 걷히듯이 사라지고 맙니다. 참으로 부활을 믿는다면 삶의 목적과 존재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성도들은 믿음으로 부활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건 이상의 실재적 사건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를 보면 부활에 대해서 아무런 묵상도 깊이 있는 생각도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인생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습니다. 이 땅의 육신의 삶이 전부가 아니고, 다시 살아나 영원히 산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것이야말로 어떤 정신 혁명보다 위대한 혁명이며, 놀랍고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활을 믿는다면 육신의 삶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을 믿는다면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이미 부활에 대한 믿음이 들어오는 순간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안개가 걷히듯이 사라지고 맙니다. 참으로 부활을 믿는다면 삶의 목적과 존재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 만약 부활이 없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교회는 다니지만, 믿는다고 고백은 하지만 실제 내 안에는 부활 신앙이 전혀 없이 부활이 없다면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내 안에
일어나고 있지 않는지 깊이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지 아니하셨을
것입니다. (고전15:13).
[만일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지 아니하셨느니라.] (고전15:13).
부활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일어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시며, 입증하시던 분이 죽음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면 죄인들 가운데 누가 감히 부활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철학과 신화와 전설 가운데서도 죽음 가운데 일어난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이 있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인 예는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영혼의 부활이나 강시, 혼백이 빠져 떠도는 귀신의 모습과 같은 그런 상상의 소산물이었습니다. 때로는 죽어서 혼이 귀신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만일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일어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삼일 뒤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스스로 제자들 앞에서 몇 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죽임을 당하고 셋째 날 다시 일어나리라” (마17:23, 16:21, 20:19)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7:23] 죽임을 당하고 셋째 날 다시 일으켜지리라, 하시니 그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마 16:21] ¶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가서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셋째 날 다시 일으켜질 것을 자기 제자들에게 보이기 시작하시니
[마 20:19]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요, 셋째 날에 그가 다시 일어나리라, 하시니라.
주님의 이런 말씀은 제자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장로들과 제사장들, 서기관들도 다 들었고 아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죽인 후에 병사들을 시켜 무덤을 봉인하고, 단단히 지키게 하기도 했습니다 (마27:64).
[그러므로 명령하사 그 돌무덤을 셋째 날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그를 훔쳐 가고 백성에게 이르되,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 하면 마지막 잘못이 처음 것보다 더 나쁠까 염려하나이다, 하매] (마27:64)
부활이 없다면 주님이 하신 말씀은 모두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주님이 공생애 사역 동안 하신 모든 일 역시 거짓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한 일인지, 마귀의 능력으로 한 일인지, 아니면 호사가들의 지어낸 말대로 인간의 잠재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낸 초능력자가 되어서 한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죽음으로부터 부활만이 모든 것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만일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지 아니하셨느니라.] (고전15:13).
부활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일어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시며, 입증하시던 분이 죽음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면 죄인들 가운데 누가 감히 부활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철학과 신화와 전설 가운데서도 죽음 가운데 일어난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이 있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인 예는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영혼의 부활이나 강시, 혼백이 빠져 떠도는 귀신의 모습과 같은 그런 상상의 소산물이었습니다. 때로는 죽어서 혼이 귀신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만일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일어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삼일 뒤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스스로 제자들 앞에서 몇 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죽임을 당하고 셋째 날 다시 일어나리라” (마17:23, 16:21, 20:19)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7:23] 죽임을 당하고 셋째 날 다시 일으켜지리라, 하시니 그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마 16:21] ¶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가서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셋째 날 다시 일으켜질 것을 자기 제자들에게 보이기 시작하시니
[마 20:19]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요, 셋째 날에 그가 다시 일어나리라, 하시니라.
주님의 이런 말씀은 제자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장로들과 제사장들, 서기관들도 다 들었고 아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죽인 후에 병사들을 시켜 무덤을 봉인하고, 단단히 지키게 하기도 했습니다 (마27:64).
[그러므로 명령하사 그 돌무덤을 셋째 날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그를 훔쳐 가고 백성에게 이르되,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 하면 마지막 잘못이 처음 것보다 더 나쁠까 염려하나이다, 하매] (마27:64)
부활이 없다면 주님이 하신 말씀은 모두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주님이 공생애 사역 동안 하신 모든 일 역시 거짓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한 일인지, 마귀의 능력으로 한 일인지, 아니면 호사가들의 지어낸 말대로 인간의 잠재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낸 초능력자가 되어서 한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죽음으로부터 부활만이 모든 것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 만약 부활이 없다면 - 2부로 계속하겠습니다. ... To be continued..
출처. 말씀침례교회, pastor. Peter Y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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